[논객칼럼=김대복] “지방에 거주해서 서울에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딸이 해외 유학 중이라서 서울의 병원에 갈 시간이 없습니다.” “사고로 인해 이동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상은 대리 처방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병원 진료실은 인생사가 축약돼 있다. 희로애락이 켜켜이 쌓여 있다. 다행히 입냄새는 치료가 잘된다. 구취 치료를 25년 이상 해온 필자는 걱정을 덜고, 기뻐하는 사람의 모습에 익숙하다.
그러나 난감한 경우도 있다. 대리 처방을 요청받는 경우다. 대리 처방은 환자가 아닌 제 3자가 처방을 대신 받는 것이다. 치료 중인 환자가 한의원에 오지 못할 수 있다. 이 때 가족이 사정을 설명하면서 대신 약을 받아가기를 희망한다. 때로는 친구나 친척이 한의원에 오기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며 전화 상담 후 처방을 요청하기도 한다.
대리 처방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말은 “지난번에 받은 약과 똑 같이 지어주세요”로 거의 획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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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리 처방은 위험하다. 같은 입냄새라도 원인과 증상이 모두 다르다. 입냄새 유형도 단순한 생리적 구취, 질환에 의한 진성구취, 실제로는 냄새가 나지 않는 가성 구취로 나쉰다. 각 유형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다. 또 진성구취도 질환 마다 치료법에 차이가 있다. 원인이 같아도 증상의 경중에 따라 쓰이는 약의 양과 성분이 다를 수 있다. 치료 중인 환자도 증상의 변화 과정에서 기존과 다른 처방이 나갈 수 있다.
의사가 매번 환자와 대면해 진단해야 하는 이유다. 의사는 이 과정을 통해 원인 질환과 입냄새 호전 여부를 살피고, 개인의 특이한 체질을 감안하고, 연령과 건강 상태를 고려해 최적의 처방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의료행위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렇기에 의료법 제17조 제1항에서는 처방전을 포함한 의료행위를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로 한정하고 있다. 또 의료법 제89조 벌칙 조항에서는 적법하지 않은 의료행위를 할 경우에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대리 처방 금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구취 환자가 불가항력적으로 한의원에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법은 예외적으로 가족에 한 해 대리처방을 인정한다. 대리 처방 요건은 같은 입냄새의 장기간 치료, 환자 거동 불편, 주치의의 안전성 인정이 충족되어야 한다.
대리 처방 가능성 근거는 보건복지부 고시 제2006-106호에 바탕을 둔 다음과 같은 유권해석이다. ‘진료는 대면 진료가 원칙이다. 건강보험 관련 규정에서 예외적으로 가족에 대하여 동일 상병, 장기간 동일 처방, 환자 거동 불능, 주치의 안전성 인정 경우에만 처방전 대리 수령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질환 증상이 있으면 대리 처방이 불가능하다.’
엄격하게 대리처방을 금하는 것은 생명 존중, 의료 사고 예방 차원이다. 약물의 오남용은 인체를 병들게 할 수 있다. 비록 입냄새 한약은 인체 친화적인 약재로 구성되지만 타인의 체질과 자신의 체질은 같을 수 없다.
입냄새는 빠르면 1개월에 치료된다. 심한 경우도 3개월이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환자는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진료를 받는다. 입냄새는 구태여 대리처방을 받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김대복한의학 박사로 혜은당클린한의원장이다. 주요 논문과 저서에는 '구취환자 469례에 대한 후향적 연구', ‘입냄새 한 달이면 치료된다’, ‘오후 3시의 입냄새’가 있다. |